오늘 우리의 삶은 성적 자극을 유발하는 매체의 강속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흔하게 듣는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포르노 매체에 접근하게 되고 중독됩니다. 포르노 거래의 70%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 사춘기의 아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통계를 보고, 어떤 분은 그렇게 많은 아이들 가운데 40%가 중독이 되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건강한 소식이라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독이 된 아이들은 대학생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아이가 그리스도인이 되어도, 여전히 자신의 비밀스런 버릇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본인은 한편으로 그것을 즐기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즐기는 것보다 더 자신의 행동을 혐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포르노 중독은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됩니다. 설사 아내에게 들키고 난 다음에도 계속되기에, 아내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물론 이 심각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나는 이중간첩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저는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빠지는 덫에 대해서 말하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술중독(alcoholism), 지나친 욕심, 도박에 대해서 차례로 말했고, 오늘은 포르노(pornography)의 덫을 이야기합니다.
이전에는 포르노를 전달하는 매체가 잡지 형태로 국한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오늘날 포르노는 어디에 가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런 영화를 빌려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를 보지 않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은 영화나 연속극 대신에 가족끼리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상상해 보지 못한 일탈된 행동들에 무작정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편집광적인 집착, 잔인한 폭력장면, 부자연적인 성관계 등이 그대로 우리들에게 전달됩니다.
물론 인터넷이 기여한 바는 너무 지대합니다. 몇 년 전 저는 처음으로 집에 인터넷을 설치했습니다. 설치한 바로 그날, 저는 악몽을 꾸었습니다. 너무나 생생해서 잊어 버릴 수 없었는데, 세 마리의 악마가 나타나 저를 벽에다 못박으면서 ‘너를 이 집에서 파멸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음 날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그런 꿈을 은혜로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터넷은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으로 바로 포르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꿈 덕분에 무서운 유혹을 피했지만, 악한 영은 끊임없이 인터넷을 통해 우리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을 실감 있게 알았습니다. 동성애를 몰랐던 한 젊은 여자가 레즈비언 비디오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발견하고 레즈비언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는 이야기도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빠지는 중독과 덫들에는 어떤 패턴이 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행동이 중독이 되고, 마침내는 중독된 상태가 자신을 지배합니다. 인터넷이나 음란 전화가 그런 예들입니다. ‘어떻게 그런 중독에 빠집니까?”라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수화기를 들어 전화번호를 돌리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호기심 때문에 그렇게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중독에서 우리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이런 중독에 빠진 예를 들어 봅니다.
중세 시대에 살았던 어떤 사람은 자물쇠와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자신을 묶고 있는 자물쇠와 사슬을 보니 자신이 만든 것(자신이 자초한)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언젠가 악령에 잡힌 어떤 여자분을 상담했는데, 그녀는 어느 날 영화를 보다가 혐오스런 장면을 보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수요일 어떤 분은 자신의 문제 때문에 소위 ‘기독교’ 카운슬러를 찾아 갔었습니다. 그 카운슬러는 ‘당신은 당신 속에 있는 어두운 부분을 경험하고 인지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당신에게 주어진 빛이 얼마나 밝은 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는 묘한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제발 그 카운슬러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그 말을 쥐에 비유하면 ‘만약 네가 덫에 걸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를 알기 위해서, 덫에 한 번 걸려 보아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덫이 덮치는 순간, 확실히 어떤 함정인가를 알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텔레비전은 포르노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체입니다. 한 연속극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성애, 근친상간에 대해서 사람들이 웃을 정도로 재미있게 만들면 사람들은 그런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된다.” Jerry Springer 쇼(주: Springer는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변호사로 30대 중반에 신씨내티 시의 시장까지 지냈고, 방송으로 커리어를 쌓다가 자신의 쇼를 통해 각종 사회적 성적인 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보내고 있음) 가 저질이라는 것에 모든 사람이 동의합니다만, 사실 그 쇼는 쓰레기만도 못합니다. 쓰레기는 그나마 우리가 ‘처리’할 수 있지만, 그 쇼는 처리하기도 힘든 수준의 내용을 ‘언론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시청자들에게 쏟아 붓고 있습니다.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이 쇼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우려를 가져야 합니까?
포르노는 매춘을 포함한 다른 범죄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덫에 빠지면 당신은 그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예가 되고, 당신 속의 죄가 당신을 지배합니다. 1950년대에 휴 헤프너가 도색잡지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 전에는, 매 6분 간격으로 누군가의 아내나 딸이 강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습니다.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 때문에 결국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포르노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술 중독은 후천적으로 가지게 되며 게임/도박 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포르노 중독은 우리 자신 속에 가지고 있는 성향 때문에 생깁니다. 이 중독은 남자를 주 희생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Focus on the Family의 James Dobson 박사의 말에 의하면 약 50%의 ‘그리스도인’ 남자가 어느 정도의 포르노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육신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들이 포르노 중독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항상 포르노에 의해서 침탈당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베드로 전서 2:11에서 ‘친구들이여,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을 편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을 더럽히는 포르노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죽도록 싸워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찰해 온 덫(술, 욕심, 섹스, 포르노)은 하나님이 약속만큼 강력한 흡입력으로 우리를 빨아들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덫은 빠지기 전에는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고, 빠질 때는 깊은 희열을 맛보지만, 결국에는 거기에는 영원한 기쁨이 없으며, 우리들의 영혼은 파멸되게 됩니다. 이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어떻게 예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은 이 덫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헌신을 요구하셨습니다. 덫에 빠진 이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주셨습니다.
제일 먼저 “간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서로에게 헌신하고 사랑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자랍니다. 부모들의 모습에서 가정의 화평을 배웁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계명은 우리자신의 감정적 안정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잠언에는 간음하는 자의 영혼이 파괴된다고 했지만, 저는 간음죄 때문에 영혼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이유는 간음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결혼하지 않았으니까 간음죄와는 무관해. 결혼하기 전에 그런 관계를 가져도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의 몸과 삶은 하나님이 소유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합리화를 통해서 자신의 죄의식을 감추려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분들에게 성경은 ‘부도덕한 삶’을 살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 네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는 끔찍한 말을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음욕을 품는 것도 아니며,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에게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마음과 음욕을 품는 마음 사이의 간격이 그렇게 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포르노는 우리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향을 자극하고 과장합니다. 각종 형태의 기술과 방법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며 예수님의 말을 부정합니다. 아참! 마음으로 음욕을 품었다고 해서 간음죄를 정말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 친구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데, 다음에 설명하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말하신 대로 어떻게 여자와 직접 관계를 가지지 않고, 간음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음욕을 품고 누군가를 본 다음,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순간 우리는 죄를 짓게 됩니다.
포르노의 세계는 사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포르노 산업 때문에 여자들은 성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젊은 여인들이 마약을 하고 성병을 옮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성적인 욕망이 채워지기만 하면 그뿐입니다. 그런 죄를 짓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합니다. 포르노는 바로 이런 과정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포르노의 내용들은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예수님을 모욕하고 내용들입니다. 포르노는 우리를 욕망으로 이끌고 욕망에 지배 받게 하고, 음욕을 품는 것을 정당화시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포르노 급의 연속극이나 영화, 아니면 포르노가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한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직장에서나, 광고판에서나, 텔레비전에서나, 신문에서나, 그리고 물론 인터넷에서 포르노가 넘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순수하게 죄를 짓지 않고 살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다음 구절에서 때묻지 않게 사는 방법을 말해 주셨습니다: “네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찍어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오른’ 눈이라는 것은 두 눈 가운데 ‘좋은’ 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눈을 뽑아야 합니까? 그렇다면 이제 교회에서 애꾸눈을 많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손과 눈을 성적 욕망의 덫에 빠지게 되는 두 개의 중요한 수단으로 들었습니다. 포르노를 보기위해서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들 남자들이 얼마나 눈을 통해서 다른 여자들에 휘둘리기 쉬운지 여자분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은 “만약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면”이라고 했는데, 저는 여기서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에는 “만약 네 눈 때문에 네가 넘어지면”이라고 나오는데, 넘어진다는 그리스어를 영어로 하면 scandalized입니다. 스캔들이란 말은 추문 나쁜 소문이라고 한국말로 알려져 있지만, 원어의 의미는 ‘덫에 빠지다’ 혹은 ‘잡히다’입니다. 예수님은 만약 당신의 눈이 자꾸 당신을 함정으로 이끌고 있다면 눈을 뽑아 던져버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를 달콤한 말과 함께 만지려는 손을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룻쩌 목사님, 정말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지요?’라고 묻는 분이 있을 겁니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말은 맞습니다. 눈을 뽑아내도, 팔을 잘라내도 한 눈과 한 팔로 살 수 있습니다! 지옥에서 두 눈과 두 팔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날까지 한 눈과 한 팔로 살다가 하늘에 가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정말 강력한 말로 제발 우리가 잘못된 욕망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진짜 눈을 뽑고 팔을 자른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분명히 예수님 시대에는 마취제가 없었으니까, 그 고통은 우리가 짐작할 수 없겠지요? 포르노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그런 고통이 수반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다음 주에 이야기할 주제이기는 하지만, 누군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을 때, 당신이 그 관계에서 나올 때도 쉽게 나올 수 없습니다. 아주 고통스럽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직업을 바꾸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업무상 여행을 가서, 묶고 있는 호텔에서 제공되는 ‘오락’ 프로그램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도 당신을 모르는 곳에서 포르노는 당신을 유혹합니다. 만약 그 덫에 중독되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이 덫을 빠져 나오기 위해 직업을 바꾸어야 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저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분에게 저는 ‘직업을 바꾸거나 그만 두는 것과 눈을 뽑아내고 팔을 잘라내는 것 어는 것이 쉽습니까?’라고 물어 보겠습니다.
언젠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포르노 잡지를 모두 버린 대학생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 책과 사진들은 나의 신체의 일부분같이 느껴졌다.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주 고통스럽다고 하셨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중독이라고 하셨습니다.
‘절단’은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리고 절단할 때 완전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암에 걸려서 의사가 수술을 권하면서 ‘아 암의 일부분만 절단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수술에서는 암세포뿐 아니라 암세포로 의심이 가는 부분까지 완전히 제거합니다. 그래야 환자가 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언젠가 저에게 온 중독에 빠진 남자분에게도 고통스럽게 완전히 절단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더 이상 중독과 씨름할 필요가 없다고 했더니, 그분은 “저도 그렇게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가 어떤 옵션을 가지고 있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좀더 즐기고 싶습니다). 그런 옵션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그 덫에 빠집니다. 우리는 완전히 나오기를 거부합니다. 완전히 절단하는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몸의 일부분과 같이 중독증세가 굳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한 사람이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용무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의사는 ‘냉장고에 있는 것 마음껏 들고 가세요!’라고 해서, 냉장고를 열었더니, 거기에 사람의 팔이 플라스틱 랩에 싸여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을 뿐 아니라, 며칠 동안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눈과 팔이 그 냉장고에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십자가와 여러분 사이에 있는 간극(間隙)을 뛰어넘고 싶다면, 길게 한 번에 넘어야 합니다. 여유 있게 두 번 뛰어서 넘겠다면 깊은 간극에 빠지고 맙니다. 죄를 절단하기 위해서 무지막지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완전히 없애야 할지 모릅니다. 눈을 뽑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혹시 이 가운데 시카고의 홍등가를 돌아다니는 분이 있습니다. 제발 이 자리에서 그런 죄와 단절하십시오. 눈과 귀를 없애고 사는 것이 눈과 귀를 가지고 죄를 짓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렇게 된 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3:14에도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라고 나옵니다. 생각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생각은 할 수 있다는 옵션을 남기지 마십시오. 옛적의 죄로 돌아가는 길을 남기지 마십시오.
안녕하세요? 룻쩌 목사입니다. 예수님이 말한 길은 끔찍하게 보이지만, 우리를 정욕의 죄에서 나오게 하는데 효과적입니다. 가만히 여러분이 포르노에 빠지는 죄에서 나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 조용히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도 좋습니다. 당신을 사람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용서가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분에게 당신의 문제를 고백하고 나누어 보십시오. 당신의 죄가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어 아뢰십시오. 하나님께 당신을 지배하려는 죄의 권세에서 보호해 달라고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옛날의 죄의 길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와 때를 피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음란한 세대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기를 기도합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친구로 알고 지내는 것이 우리 몸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충족시키는 것보다 더 낫지 않습니까? 월터 트로비쉬(그리스도 인의 결혼과 남녀관계에 대한 책으로 유명한)은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똑 같은 책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만족되지 못하는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욕망이 되면 당신이 가진 허전함을 채워 주십니다. 그분은 당신에게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남기는 욕망을 좇아가는 삶이 얼마나 허구라는 것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자연스럽게 그분을 따라가게 되며, 그분이 당신의 원하는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정말 그렇게 사는 것은 값어치 있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힘들지만 혼자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제 주위에 혼자서 살지만 행복하게 지내는 많은 분이 이렇게 말하는 저에게 당장 ‘목사님 저희는 잘 살고 있습니다! 결혼한 분들보다 더 행복해요!’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혼자 사는 것이 항상 혼동과 좌절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드려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많은 분들은 ‘나이가 들기 전에 좀더 즐겨야겠다, 이렇게 혼자 늙어가는 것보다 즐겁게 늙어야겠다.’라는 생각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눈이 없이 살고 팔이 없이 사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팔이 없어졌다면, 그는 야구선수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 조종사도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런 꿈을 잃어버리게 되겠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팔이 없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포르노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를 말씀 드리렵니다. 첫째, 먼저 당신은 빛으로 나와야 합니다. 언젠가 미국의 수도 워싱톤 시에서 저는 한 그리스도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그날 저와 그분은 한 우산을 쓰고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목사님, 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 달에 400불 이상을 포르노에 쓰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제 가족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아마 하나님만은 아실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는 다른 존재(=사탄)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덫을 즐기고 있을까요? 그분은 자신은 100번 아니 1000번을 이 덫에서 놓여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에게는 그분의 처절한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몇 분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그가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음을 확신하는 분들입니다. 그분에게 ‘당신이 빠진 함정에서 당신은 탈출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격려하는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자신의 함정에 깊이 빠진 그분의 아내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분은 남편에게 ‘당신 앞으로 이런 저질 잡지를 보면 나랑 끝장인 줄 알아요! 당신이 이렇게 변태인줄 몰랐어요!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이런 식으로 남편에게 이야기합니다. 많은 경우 남편의 문제가 사실은 자신에게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면, 이런 말은 사실 이미 자신의 죄와 수치를 놓고 싸우는 남편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됩니다. 가장 자신을 아껴 주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입에서 자신의 수치와 상처를 깊게 하는 말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자신도 감당하지 못해서 어쩌지 못하는 문제 속에 깊이 빠져 있는 분이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될까요? ‘여보 그 문제로 당신이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저도 당신이 괴롭다고 하니, 당신을 사랑하는 제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네요. 당신은 아직도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문제로 당신에게서 떠나갈 리가 없지요. 어떻게든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아 보지요. 사실 저도 당신에게 알리진 않았지만, 비슷한 함정에 빠진 적이 있어요. 어떻게든 이 문제를 같이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요.’ 부부관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금방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의 가까운 사람에게 당신의 문제를 알리고 상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당신은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도 성경에서 ‘너희 죄가 주홍빛 같이 붉을지라도, 내가 희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셀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같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없애셨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죄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십니다. 그분이 당신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로 그 죄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정죄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직도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 들이지 못한 분은 오늘 지금 그분을 구원자로 받아 들이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구원자되신 그분과 계속적인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당신이 지켜야 할 진지가 있는데, 당신의 적이 항상 같은 길을 통해 당신을 공격해 온다고 생각해 봅시다. 당신은 그 적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당신에게 오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방어벽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아주 훌륭한 젊은이가 저에게 와서 그랬습니다. “목사님, 저는 가끔씩 그런 잡지를 사서 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난 다음에도 그래서 자신에게 몇 번이나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당신이 완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꼭 아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여기 제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 5개를 완전히 외우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요…
무엇이든지 순결하고, 무엇이든지 정직하며, 무엇이든지 바람직한 것을 바라며, …
육체의 정욕을 따라가지 말고, 피하라…
내가 사탄의 계획을 깨어 버렸노라…
등등 입니다.
“앞으로 그런 잡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앞에 놓여 있을 때, 이 구절의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소리 내어 보세요. 그래도 확신이 가지 않으면 다섯 번 되풀이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의 아파트 메일박스에 어느 날 잘못 배달된 도색잡지가 와 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보는데…. 그러나 목사님과 한 약속이 있는데…’라면서 그는 그 구절들을 암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구절들을 암송하고 암송하다가 그 잡지를 결국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젊은이에게서 포르노와의 전쟁이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에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서 있습니다. 시편 109:9에도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깨끗한 길을 가오리이까? 당신께서 일러주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서 살면 되오리이다.””라고 나옵니다.
한 20분으로 끝내려 했는데, 제가 예상한 것보다 설교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순교자의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미국(한국도 마찬가지지만)에서는 순교자가 될 수가 없기에 순교자의 면류관은 꿈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순교자의 면류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계시록 2:10절에는 환란을 당해서 견디라고 한 주님의 권고가 나옵니다. 주님은 분명히 “네가 나에게 죽도록 신실하게 있으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나옵니다. 야고보서 1장에도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여러분에게 달콤한 말을 하지만, 예수님은 성령님을 따라 그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더럽혀져 있습니다. 입으로 담을 수 없는 타락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의 용서를 보고 당신의 희망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 속에 순결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는 스스로 순결해질 수도 없고, 순결해지려는 소망조차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속에는 선한 것이 정말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순결한 마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행복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어 하나님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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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쩌 목사입니다. 이 설교를 듣는 분들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현대 문명과 기술이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에게서 빼앗아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만큼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공간은 없어 보입니다. 이 기술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자신이 얼마나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이 되었는지를 소개했던 분이, 그분 주위의 26 분 가운데 23 분이 자신도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었다고 고백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아이들의 방에서 컴퓨터를 빼서, 아이들이 공개된 자리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하게 하십시오. 아이들이 포르노와 관련된 내용을 보지 못하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십시오. 이 주제를 가지고 가족들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감시하게 하십시오. 서로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제발 그 깊고 깊은 덫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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