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 머리속에 지우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힘든 과거들, 현재들을 다 지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셨기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시험 공부를 하더라도, 용어가 기억이 안나고, 책을 읽더라도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겼다. 바빠서, 스트레스 받아서 그러리라 자위해 보았지만, 우리 교수님을 보면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갑자기 오셔서 진행상황을 물어보시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또 왜 그리 진도가 늦냐고 화를 내셨다. 뿐만아니라 끝내기로 한 일들을 그걸 왜 하냐는 식으로 이야기 하셨다. 정말 힘든 저녁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기분이 안 좋으셨으리라, 혼자 정당화 시켜 보지만 계속 화가 났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빨리 해결하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였다. 계속 마무리를 제대로 집중해서 하지 못하는 모습도 한심해 보였다. 다른 사람처럼 왜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집에 오면서 상수한테 이야기도 해보고, 기도도 해보고,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논문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다. 겨우 잠들고 오늘 아침 오전 내내 계속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생각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랜덤 숙제도 해야 하는데, 참 쉽지 않은 박사 과정이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 가는데 도움 받기는 힘들고, 다들 위로해 준다고 하지만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그런 상황,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 비투스가 뛰어내렸던 연극이 부럽기만 하다. 다 속일 수만 있다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다면.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위해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포기하지 않고, 또다른 도전을 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재일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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